그까짓 포도 한 알쯤이야라고 생각하시나요? 고양이가 포도 한 알을 먹고 급성 신부전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는 일이 실제로 발생합니다. 단골 미용실 원장님이 반려 고양이 보라 이야기를 꺼냈을 때, 저도 처음엔 "설마 그렇게까지?" 싶었습니다. 고양이가 사람 음식을 탐낸다는 게 귀엽게 보일 수 있지만, 어떤 음식은 소량만으로도 생명을 위협합니다. 지금부터 실제로 위험한 음식들을 짚어드리겠습니다.
아보카도와 통조림 생선, 익숙한 음식이 독이 된다
아보카도는 최근 몇 년 사이 건강식으로 인기가 높아진 식품입니다. 그런데 고양이에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보카도에는 퍼신(Persin)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퍼신이란 곰팡이 독소에 대항하기 위해 아보카도가 자체적으로 생성하는 천연 살균 물질로, 고양이에게는 심각한 구토와 설사를 유발하는 독성 물질로 작용합니다. 특히 덜 익은 아보카도일수록 과육에도 퍼신 함량이 높아져서 위험도가 올라갑니다.

집에서 아보카도 씨앗을 발아시키는 걸 즐기시는 분들이 계신데, 씨앗과 줄기 부분에 포신이 특히 많이 집중되어 있습니다. 호기심 많은 고양이가 발아 중인 씨앗이나 줄기를 입에 댔다면 즉시 동물병원으로 향하셔야 합니다.
통조림 생선도 의외의 복병입니다. 사람용 참치캔이나 고등어캔을 길고양이에게 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등 푸른 생선에는 불포화 지방산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이 불포화 지방산을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고양이 체내에서 비타민E 소모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빨라집니다. 비타민E가 결핍되면 황색 지방 증후군이 발생할 수 있는데, 황색 지방 증후군이란 체내 지방 조직에 염증성 변성이 생기는 질환으로 심한 통증과 발열을 동반합니다. 좋은 마음으로 준 생선 한 캔이 이런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날계란과 날생선, 날것의 위험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계란은 완전식품 아닌가요?" 이런 생각으로 날계란을 고양이에게 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익힌 계란이라면 단백질 공급원으로 소량 급여는 괜찮지만, 날계란 흰자는 다릅니다. 날계란 흰자에는 아비딘(Avidin)이라는 단백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비딘이란 비오틴(비타민 B7)과 강하게 결합하여 장에서의 흡수를 차단하는 물질로, 계속 먹으면 비타민B 결핍 상태를 유발해 피부 문제나 신경계 이상으로 이어집니다. 계란을 익히면 아비딘이 열에 의해 불활화 되어 이 문제가 사라지므로, 반드시 익혀서 주시는 것이 맞습니다.
여기에 살모넬라균 감염 위험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날계란을 통한 살모넬라 식중독은 사람에게도 위험하지만, 체구가 작은 고양이에게는 탈수와 패혈증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날생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생선회를 꽤 좋아하는데, 고양이에게는 간식 수준 이상으로 날생선을 줘서는 안 됩니다. 날생선에는 티아미나제(Thiaminase)라는 효소가 들어 있습니다. 티아미나제란 티아민(비타민B1)을 분해하는 효소로, 날생선을 지속적으로 먹은 고양이는 티아민 결핍으로 인해 신경계 이상, 경련, 심하면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습니다. 불에 익히면 티아미나제 활성이 사라지니, 생선을 주실 때는 꼭 익혀서 소량만 드리십시오.
포도와 건포도, 한 알로도 신부전이 온다
이 항목은 정말 강조하고 싶습니다. 포도와 건포도는 고양이에게 소량만 먹여도 급성 신부전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급성 신부전이란 신장 기능이 갑자기 저하되어 노폐물이 몸 밖으로 배출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며, 치료 골든타임을 놓치면 회복이 어렵습니다. 정확한 독성 기전은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량으로도 심각한 증상이 나타나는 사례가 보고되어 있어 절대 안전한 양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건포도는 더 위험합니다. 크기가 고양이 간식과 비슷해서 호기심에 덥석 삼키는 경우가 생깁니다. 요구르트나 시리얼에 섞인 건포도를 고양이가 핥아먹는 상황도 충분히 생길 수 있습니다. 포도나 건포도를 먹었다면 섭취 후 한두 시간 이내에 동물병원으로 가서 구토 유발제 처치를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시간을 넘기면 이미 장으로 흡수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미용실 원장님네 보라가 식탐이 많다고 하셨는데, 이런 고양이일수록 식탁 위 과일 바구니 관리가 필수입니다. 제 경험상 고양이는 소리 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눈을 잠깐 뗀 사이에 이미 입에 넣고 있는 경우가 생깁니다. 저도 상추를 꺼내 놓았다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누니가 소리 없이 식탁에 올라가 야금야금 뜯어먹고 있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또 얼갈이를 다금고 있는데 이파리를 먹고 있더라고요. 그게 해롭지 않은 야채라서 다행이었지만, 포도였다면 정말 아찔한 상황이 펼쳐질 뻔했습니다.
마늘·파·양파, 요리 양념이 적혈구를 파괴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놓치기 쉬운 함정입니다. 마늘, 파, 양파, 부추는 우리 식단에서 빠지지 않는 재료들입니다. 문제는 이 계열 식물 모두가 고양이 체내에서 적혈구를 파괴하는 용혈성 빈혈을 유발한다는 점입니다. 용혈성 빈혈이란 적혈구가 정상보다 빠른 속도로 파괴되어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게 되는 상태를 말하며, 심해지면 수혈이 필요합니다.
특히 마늘은 같은 양을 기준으로 양파보다 고양이에게 약 5배 더 강한 독성을 나타냅니다. 고양이가 생마늘을 통째로 먹는 경우는 드물지만, 감바스나 파스타처럼 마늘로 맛을 낸 요리, 갈릭 파우더가 들어간 음식을 사람 식탁에서 뺏어 먹는 경우가 문제가 됩니다. 사람 음식을 탐내는 고양이를 키우신다면 이 부분이 특히 신경 쓰이는 부분일 겁니다.
고양이에게 위험한 대표 음식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보카도: 퍼신(Persin) 성분으로 구토·설사 유발, 씨앗과 줄기는 특히 위험
- 날계란 흰자: 아비딘(Avidin)이 비타민B 흡수를 차단, 반드시 익혀서 급여
- 날생선: 티아미나제(Thiaminase)로 티아민 결핍 유발, 소량만 익혀서 급여
- 포도·건포도: 소량으로도 급성 신부전 위험, 섭취 즉시 동물병원 방문
- 마늘·파·양파·부추: 용혈성 빈혈 유발, 요리에 포함된 형태도 위험
- 술·커피: 소량으로도 혼수상태·경련 유발 가능, 절대 노출 금지
마늘 중독이 의심되면 즉시 동물병원에서 구토 유발 처치를 받고, 혈액 검사를 통해 적혈구 파괴 진행 상황을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고양이의 혈액 검사 정상 수치 기준에 대해서는 수의학적 기준을 참고하시는 것이 좋습니다(출처: 한국수의학교육협의회).
처음에 저는 아무런 정보 없이 그냥 "고양이는 사료만 먹으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 무지가 오히려 누니를 지켜준 셈이 됐습니다. 처음부터 사람 음식에 접근을 차단하는 환경을 만들어 두는 것이 가장 확실한 예방입니다. 식재료를 꺼내 놓을 때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지 않는 것, 식탁에 오르는 습관이 생기기 전에 단호하게 훈련시키는 것, 이 두 가지가 핵심입니다. 고양이가 워낙 소리 없이 움직이는 동물이라 방심하는 순간이 문제가 됩니다. 보라처럼 식탐이 강한 고양이를 키우신다면 오늘 바로 주방 동선을 한번 점검해 보시길 권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수집한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것이며, 전문적인 수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고양이 건강과 관련된 이상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가까운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