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고양이를 처음 입양했을 때 목욕을 언제, 얼마나 자주 시켜야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주변에서는 고양이가 스스로 그루밍을 하니까 목욕이 필요 없다는 말도 있었고, 또 어떤 분들은 정기적으로 씻겨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저희 고양이 누니는 브리티시 숏헤어 품종으로 단모인데도 털이 많이 빠지는 편이라 집안 구석구석마다 털이 날리는 게 고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생후 1년쯤 되었을 때 용기를 내어 첫 목욕을 시도했는데, 예상과 달리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안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고양이 첫 목욕, 꼭 필요한 걸까
고양이는 하루 중 상당한 시간을 그루밍(Grooming)에 할애하는 동물입니다. 그루밍은 혀를 이용해 털을 정리하고 몸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본능적 행동입니다. 고양이 혀에는 미세한 돌기 구조가 있어서 빗처럼 털을 빗어내고 피부의 이물질을 제거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건강한 고양이라면 목욕을 자주 시키지 않아도 위생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수의사들도 단모종 고양이의 경우 1년에 2~3회 정도만 목욕을 해도 충분하다고 권장합니다(출처: 대한수의사회). 저희 누니도 생후 12개월까지 한 번도 목욕을 하지 않았지만 특별히 냄새가 난다거나 털이 지저분하다고 느낀 적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고양이 침에는 사람처럼 냄새를 나게 하는 성분이 거의 없어서 인상 찌푸려지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하지만 몇 가지 상황에서는 목욕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장모종 고양이는 털 사이에 먼지나 피지가 쌓이기 쉬워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하고, 피부 질환이 있거나 수의사가 처방한 약용 샴푸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에도 목욕이 도움이 됩니다. 또한 털갈이 시기에 목욕을 하면 죽은 털을 한꺼번에 제거할 수 있어 집안 청소 부담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저는 털이 너무 많이 날려서 공기청정기를 주야장천 사용하는데, 목욕 후에는 확실히 털 날림이 줄어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중요한 점은 고양이마다 물에 대한 반응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부 고양이는 물을 좋아하는 이른바 '수속성' 고양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물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합니다. 따라서 첫 목욕은 고양이의 성향을 파악하는 중요한 기회이기도 합니다. 누니는 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무서워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목욕하는 동안 참는 모습도 보여서 대견하고 기특했어요.

누니는 수속성 고양이?
목욕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누니가 물을 얼마나 두려워할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인터넷에서 고양이 목욕 영상을 보면 하악질을 하거나 심하게 저항하는 모습이 많아서 각오를 단단히 했었습니다. 조금 두꺼운 긴팔 맨투맨을 입고 긴 바지를 입고 준비했어요. 하지만 막상 대야에 물을 채우고 누니를 꼭 안고서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려고 몸에서 한 손은 떼지 않고 뒷다리부터 천천히 담갔습니다. 누니를 안은 채 뒷다리부터 살짝 물에 닿게 했는데 심장이 콩닥콩닥 빠르게 뛰고 뒷다리에 힘을 주는 게 느껴졌지만 급하게 하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누니는 조금씩 적응하는 모습이 보였고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크게 저항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서 물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수속성 고양이란 물을 두려워하지 않거나 오히려 좋아하는 성향의 고양이를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고양이는 야생 조상의 습성상 물을 피하는 경향이 있지만, 터키시 반(Turkish Van)이나 벵갈 같은 특정 품종은 유전적으로 물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출처: 한국고양이수의사회). 또한 어릴 때부터 물에 자주 노출된 고양이는 성장하면서 물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질 수 있습니다.
저희 누니는 완전한 수속성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목욕하는 중에도 울지도 않고 발톱을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목욕하는 과정에서 고양이가 보이는 몇 가지 신호로 수속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물에 대한 반응을 확인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물에 발을 담갔을 때 즉시 뒤로 빼려고 하는지 관찰합니다
- 몸을 적시는 동안 하악질이나 으르렁거림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 욕조나 대야에서 탈출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강한지 체크합니다
제가 직접 목욕시켜보니 처음에는 대야에 물을 떠서 조심스럽게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샤워기 물소리를 무서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도 처음에는 대야를 사용했다가 중간에 샤워기로 바꿨는데, 누니는 오히려 샤워기의 따뜻한 물줄기를 더 편안해하는 것처럼 보이더군요. 그리고 바닥에 미리 따뜻한 물에 적신 수건을 깔아주었어요. 타일 바닥에 발이 닿으면 고양이가 매우 불안해하니까요. 저는 수건을 사용했는데 미끄럼방지 매트나 실리콘 매트를 깔아줘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고양이마다 좋아하는 방식이 다를 수 있으니까 천천히 반응을 살피면서 진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샴푸는 꼭 고양이 전용샴푸를 사용해 주세요. 사람이 쓰는 샴푸는 민감한 고양이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얼굴과 눈과 귀는 직접 물로 뿌리지 말고 젖은 수건으로 가볍게 닦아줍니다.

목욕 후 가장 어려운 드라이 과정
솔직히 목욕보다 더 힘들었던 건 털 말리기였습니다. 처음에는 드라이기를 사용하려고 했었지만 윙하는 소리를 무서해해서 포기하고 대신에 수건을 바꿔가며 여러 번 물기를 닦아주었습니다.
드라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빠르게 물기를 제거하는 것입니다. 젖은 상태로 오래 있으면 체온이 떨어져 감기에 걸릴 위험이 있습니다. 특히 아기 고양이나 노령묘는 체온 조절 능력이 약하기 때문에 더욱 신경 써야 합니다.
털이 얼마나 촘촘한지 수건을 5장 썼는데도 다 말리지 못했습니다. 다행히 저희 집은 옥상을 이용할 수 있어서 큰 빨래 바구니에 누니를 넣어 햇빛이 좋은 옥상에서 자연 건조를 시켰습니다. 누니는 따뜻해서 좋았는지 햇살 아래에서 한참 동안 편안하게 자더군요. 누니가 자는 동안 저는 빨래를 널고 옆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드라이를 거부하는 고양이가 아니라면 드라이할 때 주의사항을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 수건으로 최대한 물기를 흡수한 후 드라이기를 사용합니다
- 드라이기는 약한 바람에 적당한 온도로 설정하고, 고양이로부터 최소 30cm 이상 거리를 유지합니다
- 얼굴 쪽은 바람을 직접 쐬지 않도록 주의하며, 다리와 몸통부터 말립니다
첫 목욕 후 느낀 점
목욕 후에는 고양이가 삐질 수도 있다는 점도 알아두셔야 합니다. 일부 고양이는 목욕 후 보호자와 관계가 일시적으로 나빠지기도 합니다."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겪게 하는 거야" 하면서 원망할 수도 있겠지요? 저는 이를 대비해 목욕 직후 누니가 좋아하는 츄르를 주면서 좋은 기억으로 남도록 했습니다. 다행히 누니는 츄르를 먹고 나서 금방 기분이 풀린 것 같았고, 스스로 계속 그루밍을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고양이 목욕은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 선택하는 방법이라고 느꼈습니다. 제 경험상 목욕보다 평소에 1일 1회 이상 빗질해 주고 그루밍만으로도 충분히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털갈이 시기나 뭐가 묻어서 더러워졌을 때만 목욕시키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첫 목욕이 두려운 집사님이라면 반려동물 전문 미용실에서 한 번 경험해 보시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막상 경험해 보니 생각보다 무리 없이 할 수 있었고 누니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진 것 같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