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지원사로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코로나19가 시작되었어요. 이제 막 어르신들 얼굴을 익혀 가던 참이었죠. 오늘은 그 시절에 겪은 일을 꺼내 보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마음 한쪽이 먹먹해지는 이야기예요.
방문 대신 전화로만 일하던 시절
당시 저희 기관 지침은 어르신 댁 방문을 멈추고 전화로 안전과 안부만 확인하라는 것이었어요. 생활지원사들도 근무시간에는 재택근무 체제로 들어갔고요. 지침은 시기와 기관마다 조금씩 달랐을 거예요.
출퇴근이 없으니 편한 점도 있었어요. 그런데 힘든 일이 훨씬 많더라고요. 얼굴을 뵐 수 없으니 수화기 너머 목소리만으로 어르신 상태를 짐작해야 했거든요.
전화를 안 받으시던 날, 빗속을 30분 걸었어요
한 어르신이 계속 전화를 받지 않으셨어요. 걱정이 점점 커져서 담당 복지사님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고 방문 허락을 받았습니다.
하필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었어요. 장화를 신고 마스크를 쓰고 걸어서 30분 거리에 있는 어르신 댁으로 갔어요. 가는 내내 온갖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그런데 초인종을 누르니 어르신이 문을 여시더군요. 그때의 허탈감은 지금도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허탈함과 안도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답니다.
어르신이 화가 나셨던 이유
이 어르신은 돌봄이 더 많이 필요한 중점돌봄군이셨어요. 코로나 전에는 가사 일을 도와드렸는데, 방문이 멈추면서 그 도움이 끊기자 화가 나셨던 거예요.
코로나 상황과 복지관 지침은 미리 충분히 설명드렸고, 그때는 어르신도 고개를 끄덕끄덕하셨어요. 그런데 막상 혼자 다 하시려니 힘에 부쳐서 짜증이 극도로 올라오셨나 봐요.
이런 일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반복되었어요. 어르신은 어르신대로, 복지관은 복지관대로, 저는 저대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담당 복지사님이 나서서 설득해 보셨지만 어르신은 막무가내셨고, 결국 서비스 종결로 마무리되었어요.
며칠 뒤에 알게 된 사실
알고 보니 어르신은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해 두셨더라고요. 며칠 안 되어 등급이 나왔고, 요양보호사가 방문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배신감이 들었어요. 그 빗길을 걸어간 게 떠올라서요. 그러다 어르신이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러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어르신과 연락이 닿지 않을 때
그날 제가 했던 순서를 적어 볼게요.
- 연락이 계속 닿지 않으면 혼자 판단하지 말고 담당 복지사님께 먼저 알리기
- 방문이 제한된 시기라면 기관의 허락을 받은 뒤 움직이기
- 연락이 안 될 때 대처 순서는 기관마다 정해져 있으니 미리 확인해 두기

돌봄 일 하는 선생님께, 마음 지키는 3가지
일을 하다 보면 어르신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가 종종 있어요. 특히 돌봄 일을 하는 사람들은 감정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첫째, 곱씹지 말고 감정 쓰레기통에 버리세요. 서운했던 상황을 자꾸 되새기면 나만 더 힘들어져요. 나만의 감정 쓰레기통을 만들어 두고 안 좋은 기억은 빨리 훌훌 털어버리세요. 저는 [선생님만의 감정 쓰레기통 방법 한 줄]로 털어냈어요.
둘째, 고마워하시는 어르신들을 떠올리세요. 저는 "우리 선생님은 시간은 아주 칼이야", "나한테는 선생님이 최고야" 하시던 어르신들 목소리를 떠올리며 힘을 냈답니다.
셋째, 혼자 버티지 마세요. 감정노동자를 위한 지원 프로그램과 상담해 주는 곳이 있어요. 소속 기관이나 지역 근로자건강센터 같은 곳에 문의해서 적극 활용하세요.
지금도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이면 장화를 신고 걷던 그 길이 떠올라요. 그래도 그 시절을 버틴 덕분에 6년을 채울 수 있었나 봅니다.
다음 글에서는 생활지원사의 하루 일과를 방문부터 일지 작성까지 순서대로 정리해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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